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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의 세계

회색도시 01 본문

회색도시

회색도시 01

에마마 2018. 3. 3. 07:28

회색 도시

보쿠토 코타로 아카아시 케이지

EP.01




“ 하아, 하- ”


어둠이 내리 앉은 좁고, 음산한 골목길에는 누군가에게 쫓기듯 숨을 가쁘게 내쉬며 하염없이 달리는 어린 소년이 있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지만 잡혀서는 안 될 것이라도 있는지 제 심장 쪽 옷깃을 꼭 부여잡고 계속해서 뛴 탓에 무거운 두 다리를 이끌며 도망치고 있었다. 그의 뒤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뒤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이 없자 한참을 더 달려 익숙해 보이는 낡고 허름한 집으로 빠르게 들어갔다.


낡아빠진 썩은 나무문을 쿵 소리 나게 닫았고, 곧 힘이 풀린 다리는 스스로 저를 주저앉게 만들었다. 한참을 뛰어 다행히 집까지 도착했다는 생각에 떨리는 제 오른손을 쳐다보며 방금 전 모습과는 다르게 아무런 걱정이 없다는 듯 해맑게 웃었다.


그가 보는 세상은 색 하나 없는 따분하고 차가운 회색으로 가득하다. 아무런 색이 보이지 않는 그는 언젠가 제 운명의 상대를 만날 수 있겠지. 스스로를 위안하며 희망을 놓지 않았다. 오늘도 손에 쥔 바스라지고 서벅한 빵을 입에 욱여넣고 아무것도 없는 낡고 허름한 집에서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제가 늘 잠을 자는 마른 지푸라기 위에 누워 얇은 담요를 덥고 웅크려 잠을 청했다.


“ 빵은 무슨 색일까- ”


혼자 하는 중얼거림은 허공에서 흩어졌다. 아무도 받아줄 이 없는 제 물음에 픽, 힘 빠진 웃음을 흘렸다. 자자. 13살의 그에게 세상은 너무나도 야박하고 잔인했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처음부터 이런 세상이었기에 아직 덜 자란 앳된 아이에게서는 이미 충분한 성숙함이 풍기고 있었다. 꾀죄죄한 모습과는 달리 꽤 하얗고 근육이 잡혀있는 얼굴과 체형이었다. 생각을 할 수 있었던 나이부터 외부는 그를 매춘으로 장사를 하려고 했었다. 부모 없는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도 한정적이고 더러운 일들 투성이었다.


늘 할 수 있는 일이 없던 그는 아침, 저녁으로 마을의 작은 상점을 들어가 몰래 빵이나 우유를 훔쳐 오기도 했다. 그러다 오늘은 늘 벼루고 있던 샌다네 빵집 주인이 그를 잡으러 이 늦은 밤까지 그가 사는 마을로 쫓아왔던 것이다.


* * *


그는 어렸을 적 부모에게 버림을 당했다. 세상에는 자신의 운명의 상대가 정해져 있었고, 태어났을 때부터 그 운명에 상대가 있다면 당연히 세상은 무채색으로 보이지 않았을 터였다. 그러다 그가 5살이 되던 해, 여전히 그의 세상은 차가운 회색으로 가득했었고 그를 안 제 부모는 아무런 미련도 없다는 듯 저를 외진 마을에 혼자 버려두고 갔다.


그에게 남은 부모와의 기억은 이런 것들 뿐 이었다. 낯선 마을에서 그를 취급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매춘을 권하는 사람들이었다. 달콤한 말로 유혹을 해 그들을 따라가면 항상 익숙한 마을의 뒷 세계였다. 처음은 그들의 뜻대로 될 뻔 했지만, 그 순간 그를 구해줬던 이가 있었다. 이름도, 그의 제대로 된 얼굴도 보지 못했다. 한 없이 작던 그가 저를 구해준 말끔한 정장의 사내를 올려다봤을 때면 그 뒤로 크고 검은 양산을 씌운 채 서 있는 남자가 있었다. 그나마 볼 수 있었던 것은 살짝 웃고 있던 남자의 입술뿐이었다.


‘ 다시는 이런 곳에서 만나지 말아요.’


점잖은 목소리의 남자는 그 말만 한 뒤, 빛도 들어오지 않는 그 어두운 골목길을 빠져 나갔다. 간혹 순찰을 돌러 온다는 이름 있는 가문의 외동아들이라고 수근 대는 이들의 말을 얼핏 들었던 것 같았다. 그 이후로 남자와의 접점은 없었지만 말이다.


* * *


아침이 밝았다. 그가 머물고 있던 낡고 허름한 집에도 빛은 들어왔다. 새벽부터 기사거리를 잔뜩 담은 두터운 신문을 돌리는 소년의 목소리가 그의 귀를 찔러왔다. 아카아시의 아침은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창밖으로 들어오는 햇빛은 오늘따라 유독 더 밝고, 쨍쨍했다.


오늘은 옆 마을에 가지 못하겠구나. 샌다네 빵집도 가지 못 할 거야.


어제 먹은 빵은 이미 그의 뱃속에서 분해 된지는 오래였다. 일어나자마자 그의 배에서 울리는 꼬르륵 소리에 마른 손을 제 배에 올리며 힘 빠진 한숨소리를 푹 내쉬었다. 보통 일어나서 그가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천천히 옆 마을로 이동을 하면 오전이 끝나가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저녁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봐 두었던 빵집, 혹은 과일가게로 가 몰래 음식을 훔쳐오는 것이 그의 일과였다. 하지만 어제 마지막이었던 샌다네 빵집에도 걸렸으니 다시는 옆 마을로 가지 못하게 됐다. 오늘 하루는 어떻게 버텨야 하지, 아카아시는 다시 마른 지푸라기 위로 제 몸을 눕혔다.


그의 시선으로 보이는 것은 천장이 다 헤져 간혹 보이는 푸른 구름과 들어오는 빛줄기뿐이었다. 하늘에서 빵 부스러기라도 떨어지면 좋을 텐데. 가능성이 만무할 생각을 하며 넋을 놓고 흘러가는 푸른 구름을 바라보기만 했다.


3일 이상을 굶어본 적도 있었다. 정말 죽고 싶을 만큼의 고통이었다. 그에게 끼니를 제외한 걱정은 아무것도 없었다. 비가 오면 밖으로 나가 오늘 빗물을 모두 받아 샤워하듯 손으로 문질러 더러워진 몸뚱이를 닦았다. 집안의 천장이 조금씩 사라지지만 아무 걱정이 들지 않았다. 잘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 그에게는 안심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먹을 음식이 사라진다면 정말 뒷 세계로 발을 들여야 할 판이다. 제게 굶주림이란 죽음과도 같다는 생각을 한 후로는 정말 죽기 살기로 마을의 음식을 훔치는 것이 그의 하루였으니 말이다.


- 툭, 툭


어느새 맑았던 하늘에는 흐린 구름이 껴 얇은 빗줄기를 내리고 있었고, 정신을 차려 제가 누워 잠을 청해야 할 마른 지푸라기를 뚫리지 않는 천장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마을에 단 한 명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조금의 식사를 대접받을 곳이 없다는 소리였다. 이미 마을에서 그를 무시하며, 싫어하는 사람들은 한 가득이었다. 더 이상 옆 마을도 가지 못하는 신세이니 아카아시는 그저 마른세수만하며 한숨을 쉬어야만 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언젠가는 마을의 유명한 마담이 제게 했던 말을 기억한다.


‘ 네가 원하거든 언제든 오렴. 식사도, 따뜻한 잠자리도. 이곳에는 모든 게 있단다.’


차라리 그때 그녀에게 갔었더라면 지금 같은 상황은 없었을 텐데 말이다. 생각의 뜻을 정리하자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그는 두 손으로 뺨을 조금 아프게 쳤다. 방금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하지만 정말 이 길 말고는 그에게 선택지란 아무것도 없었다. 이대로 굶어 죽던지, 계속 떠돌이 생활을 하는 방법뿐이었다. 보금자리를 옮겨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의 나이는 아직 열 셋이었다.


- 똑, 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그를 찾아 올 이는 아무도 없었다. 설령 있다고 한들 그를 굳이 찾아 올 인물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 낡은 집을 누가 오려 하겠는가. 설마 샌다네 빵집 주인인가, 라는 생각이 미치자 아카아시의 심장박동은 급격히 올라갔다. 열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아무도 없는 척 해야 하겠지. 누가 나를 찾아온다고. 혼자 속으로 하는 생각들이었다. 두 손끝이 차가워짐을 느꼈고, 계속해서 두드리는 이의 아카아시는 그대로 담요를 덮어 숨었다.


“ 아무도 없나- ”


익숙한 목소리였다. 매일 새벽부터 신문을 배달하는 제 또래의 남자아이 목소리였다. 아카아시는 그의 목소리를 확인 하고는 급하게 일어나 문을 열었다. 담요가 엉켜 제 발목에 둘둘 감겨 있었지만 그런 것쯤은 신경조차 쓰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어떠한 기대감에 그를 크게 불러 세웠다.


혹시나, 혹시나 내게 일을 주려는 것은 아닐까. 하는 헛된 기대감 이었다. 신문 배달원 아이가 그가 사는 집을 모를 리 없었다. 오다가다 자주 보는 둘이었고, 안 좋은 방향으로라지만 그의 마을에서도 아카아시 그는 꽤 이름을 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그가 제게 찾아 올 이유가 뭐가 있을까. 생존 앞에 그는 한 없이 작고, 긍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문을 열어 그를 불러 세우면, 몇 걸음 채 가지 않았던 남자아이는 뒤를 돌아 아카아시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양 볼과 콧잔등에는 옅은 주황빛의 주근깨가 자리하고 있었고, 반쯤 내려가 곧 떨어질 것 같은 모자를 다시 정리하며 그의 앞에 섰다. 흐르는 코를 훌쩍이며 밝은 웃음을 보이는 남자아이는 제게 손을 내밀었다. 악수하자는 뜻이었다.


이를 모르는 아카아시는 고개를 갸웃 거리며 손을 내민 남자아이의 손에 고정해 쳐다봤다. 그러다 뻘쭘 해진 제 손에 무안을 느끼며 반대편 손으로 아카아시에 오른손을 잡아 제 손과 악수를 시켰다. 그의 민망해진 것인지 아카아시는 미안. 짧고 작은 사과를 했고, 소년은 괜찮다며 여전히 웃고 있는 얼굴로 대답을 했다.


“ 네 이름이 뭐야? ”


“ 아카아시, 케이지야 ”


“ 아카아시 케이지! 멋진 이름이구나. 네게 전해줄 말이 있어서 왔어 ”


“ 네가 이곳에 살고 있다는 걸 알려준 형아가 내일 아침 데리러 올 테니까 꼭 집에 얌전히 있으라고 전해달라고 했어. 나는 네게 전해주려고 잠깐 들른 거야. 바빠서 이만 가볼게! 다음에 또 만나자, 케이지! ”


아이는 머뭇거리지 않으며 제 할 말을 건네고는 다시 돌아왔던 길로 빠르게 사라졌다. 그의 뒷모습이 제 시야에서 사라지기 전까지 아카아시는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누구인지도 모르고, 방금 전 들은 이야기대로 내일 아침까지 계속 이곳에 있었다가 혹여 제게 큰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소름이 끼친 아카아시는 곧바로 문을 닫고 꼭 걸어 잠갔다. 사실 걸어 잠글 문고리 따위는 없었다. 머리가 빠진 얇은 나무 빗자루로 문을 고정시킨 것에 불과했다.


문에 기대어 어깨를 들썩이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떨고 있었다. 내일 아침이 오기 전에 이 집을 떠나야 하는 걸까? 집마저 사라진다면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온갖 생각이 그를 괴롭히기 바빴다. 지금 당장 먹을 것도 없고, 갈 곳도 없는 아카아시는 그냥 내일이 오길 기다려야 했다. 차라리 그게 더 편하지 않을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던 것이다. 오늘은 문에 기대어 평소보다 일찍 잠에 들었다.


아침이 밝았다. 눈을 뜨기 전, 꿈속에서부터 자신의 집을 두드리는 낯선 사람이 있었다. 헉, 하고 놀라 몸을 일으키자 자신의 집 문을 두드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꿈이었던 건가. 어제의 그 아이가 했던 말도 꿈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 쾅, 쾅쾅


등에서 느껴지는 문의 진동에 놀라 조심스레 걸음을 옮겨 집안 큰 나무 기둥에 몸을 숨겼다. 이어지는 노크 소리에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제 작은 몸을 숨기기에 바빴다. 어제 그 아이가 아닐 거야. 노크 소리도 세고, 무서운걸. 아마 그 아이가 말한 사람들이겠지? 노크 소리가 사라지면 나가야겠다.


“ 아카아시 케이지. 있습니까? ”


제 이름의 떨리고 있던 어깨가 멈추었다. 아마 그 아이가 말을 해준 듯싶다. 하지만 그는 어제 저와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 아이를 완전히 신뢰하고 있지 않았다. 대답은 해볼까.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지만 말이다.


“ 모시러 왔습니다. 안에 계시다면 문을 열어주세요. ”


제게 높임말을 쓰는 굵직한 목소리에 조금은 주춤했다. 지금 나간다면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그는 아무것도 모르기에 선뜻 나설 수 없었다.


그래도 지금 삶보다는 낫겠지.


순간의 생각으로 그의 발걸음은, 그의 손은 제 집의 문을 열어 저보다 배는 큰 정장의 사내를 올려다봤다. 아아, 내가 지금 뭘 한거지?


“ 오랜만입니다. 아카아시 씨. ”


그 옆으로는 언젠가는 본 적이 있는 익숙한 얼굴이 저를 맞이하고 있었다.




-